흔히들 여행이라고 하면 해외여행을 많이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국내 어딘가로 가는 것은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일 뿐, 진짜 여행은 비행기를 타든 배를 타든 여권을 들고 해외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성에 차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허세였던 것 같다.
해외여행을 처음 가본 것은 부모님과 함께였다.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전국 방방곡곡, 미국, 캐나다, 일본..., 어느 곳을 가도 감흥은 없었다.
운 좋게 외국에 친척도 있고, 역마살 다분한 엄마와 아빠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다녀봤다.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은 시간만 나시면 낮밤 가리지 않고 우리를 데리고 다녔다.
그것도 중학교까지, 고등학교 입학한 후에는 사춘기인지 무엇인지 엄마 아빠와의 독립을 원했다. 그래서 여행도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 집에 살면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게 확실하다.
이후 대학에 입학했고 너도나도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여행이 너무 당연해서 아무 감흥이 없던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리고 혼자 여행 가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
그렇게 대학시절의 해외여행은 내가 살아나가는 원동력이 되어 줬던 것 같기도 하다.
좋지도 않은 체력으로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고 그 돈을 해외여행으로 대부분 썼던 기억이 남아 있다.
취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나에게 여행이란 명확한 도피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직장인이 되고 2년간은 해외에 나갈 생각도 못했다. 물론 국내여행도 쉽지 않은 블랙 기업이었다.
3년 차에는 견딜 수 없어 비행기 티켓팅을 했다. 삿포로행 티켓이었다. 3년 만의 여행으로 삿포로에 도착한 그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시원한 공기란...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다행히 도피여행은 나에게 많은 긍정적 영향을 남겼다.
그렇게 10년, 해외여행을 안 가면 일상생활이 되지 않던 나에게도 이제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얼마 전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코로나 시기에 나 또한 많은 걱정과 조심을 하며 생활했다. 그렇게 내 해외여행은 끝난 줄 알았다. 운영하던 해외여행 블로그도 그때 멈춰버렸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가지 못해 생긴 한(스트레스)을 국내에 풀었던 것 같다.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이라고 어렸을 때는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와닿더라. 내가 좋아할만한 일상이라는 것을 즐기는 방법을 찾게 된 것 같다.
이제야 여행을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아직도 난 하고 싶은 여행이 많고, 그만큼 재밌는 일상의 순간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지금 시점의 새로운 여행을 써 내려가면서 과거의 여행도 되짚어 보는 그런 글을 써보려 한다.
일단 며칠 전 설연휴에 다녀온 제주도 여행부터 시작해보자.